[2019 드라마] “그러게 뭘 그렇게 열심히 일하셨어요” ‘루왁인간’이 울리네
JTBC ‘루왁인간’
방영 : 2019년 12월 30일
편수 : 2부작
출연 : 안내상 김미수 장혜진 최덕문 윤경호
줄거리 : 은퇴 위기에 처한 50대의 고졸 세일즈맨 정차식을 통해 우리네 가장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수명이 짧은 직업군에 있다 보면 자연스레 이른 시기부터 퇴직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된다. 더구나 부모의 퇴직을 목도하게 되면 내 퇴직 순간에 대해서도 떠올리게 한다. ‘루왁인간’은 그런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드라마다.
▶ 아낌없이 주는 아버지
정차식(안내상)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인생을 갈아 넣은 인간이다. 회장이 바빠서 딸의 운동회에 참석할 수 없자 회장 대신 회장 딸의 운동회에 참석에 아빠인척까지 했던 인물. 말 그대로 간이고 쓸개고 모두 내주며 회사를 다녔던 이들이다.
그렇다 보니 정작 자신의 딸에게는 해준 게 없는 아빠다. 졸업식 날마저 회사 일로 인해 정차식은 딸의 졸업 사진에 없다. 그런 아버지이지만 회장 딸이 낙하산 인사로 자신의 상사로 오게 되고 회장 딸의 말을 듣고 고뇌에 빠진다.
회장 딸은 돈으로 보상을 해주려고 그렇게 바빴던 거라고 생각을 한다고 돈으로 보상을 받고 있다고 속물적인 말을 한다. 정차식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딸에게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을 한다. 그리고 정차식은 자신을 평생 가둬 놓아도 좋으니 돈을 달라고 신에게 빈다.
정차식은 우연히 먹게 된 커피체리가 자신의 내장을 거쳐 최상급 루왁커피로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정차식은 카페를 하는 딸에게 열심히 루왁커피를 만들어준다. 딸이 잡아준 건강 검진으로 인해 검진을 받기 전까지 루왁커피를 만들 수 없게 되자 모텔에 홀로 들어가 대량의 루왁커피를 만들고 피폐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었다. 내 입에 넣기 보다는 자식 입에 넣어주고자 했고 내가 입기보다는 자식이 입기를 바랐다. 그들은 알았던 거다. 남의 돈을 벌어 먹기 힘들다는 걸. 그렇기에 내 껄 줄이고 자식에게만 줄 수 밖에 없었던 거다.
▶ 회사의 뻥카 '회사가 살아야 너희가 산다'
사회 초년생, 혹은 인턴은 회사에 인정을 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심지어 모두가 최선을 잘하기 때문에 일을 잘 해야 한다. 그게 당연한 거다. 근데 자신을 갈아 넣어 일을 하면 뭐하나. 연말 보너스를 받아가는 건 윗사람들이고 회사가 성장할수록 혜택을 받은 건 사주일 뿐. 그렇게 시간, 건강을 갈아 넣어 만든 회사는 나이가 들면 나가라고 한다.
정차식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도 하고 어렵게 계약을 따내기도 하는 모든 열심인 세일즈맨이었다. 그의 딸 정지현(김미수)은 30년 넘게 한번도 지각을 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놀라워한다. 이 대목만 봐도 정차식이 얼마나 성실했던 사람인 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회사는 그런 정차식을 폐차 취급을 했다. 그의 일하는 방식은 낡고 비효율적이라고만 생각한다. 결국 정차식은 퇴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만다. 평생을 헌신한 차식이 자신이 인생을 갈아 넣어 회사와 함께 했다고 하자 인사과 직원은 “그러게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셨어요?”라고 되묻는다.
그렇다. 많은 회사 초년생들은 착각을 한다. 회사가 살아야 자신도 살고 회사가 많은 돈을 벌어야 자신도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착각. 오산이다. 평직원은 회사에 이용당할 뿐이다. 열심히 해도 열심히 하지 않아도 결국 회사의 작은 톱니 바퀴일 뿐이다. 톱니가 좀 낡으면 회사에서는 다른 톱니 바퀴면 그만이다. 심지어 비용도 더 적게 든다.
퇴사를 하면서 차식이 하는 말이 그래서 더 씁쓸하다. “나처럼 일하지 말라”는 말. 일을 못해서 자신처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회사에 충성을 바쳐서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부하 직원이 이야기한다. 자신은 얼마나 남았는지 불안하다고. 그래서 생긴 말이 있지 않은가? ‘가족 같은 회사? 걍 X 같은 회사일 뿐’이라고.
회사가 돈을 벌면 직원 복지보다는 외관에 쳐 바르는 회사? 결코 좋은 회사가 아니다. 차식은 퇴사 당일 회장에게 일침을 가한다. 속이 다 시원해지는 일갈 “회사, 혼자 큰거 아닙니다.” 대다수의 오너들은 이런 사실을 잊어버린다.
▶사향 고양이 신세가 내 신세
루왁 커피는 사향 고양이가 잘 익은 커피 열매만 골라 따 먹고 배설을 하는 과정에서 과육이 모두 소화 되고 몸 속 효소를 통해 발효 된 상태로 나와 특유의 맛과 향이 생기는 커피 원두다.
과거에는 사향 고양이의 배설물을 수거해 원두로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틀 안에 사향 고양이를 가두고 죽을 때까지 커피 열매만 먹이고 이를 통해 원두를 만들어 학대 논란이 끊이질 않는 커피다.
정차식은 사향 고양이처럼 커피 열매를 먹으면 최고급 루왁 원두를 생산한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 보면 사향 고양이와 정차식이 닮아 있다. 회사라는 틀 안에 갇혀 평생 남을 위해 일만 한 정차식, 틀에 갇혀 평생 루왁 원두를 생산하다 죽는 사향 고양이. 결국 둘은 자신을 갈아 넣어 열심히 해봐야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거다.
정차식은 인사과 직원에게 주말에 일하는 것도 당연했고 야근 수당도 없이 일을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남은 건 치과 치료를 못해 총각 김치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내와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딸, 그리고 퇴직을 앞둔 자신 뿐이다.
근데 정작 중요한 건 자신이 학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거다. 그냥 주어진 열매에만 만족한 채 갇혀 지내는 사향 고양이나 얄팍한 월급만 받고 부서져라 일하는 직장인이나 매한가지라는 거다. 그러니 열심히 일하면 뭐하나
‘루왁인간’ 결론 : 회사에 충성하지 말자. 월급 루팡하면서 자기 살 길 마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