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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 - 소설과 영화의 차이

Book/소설

by 꿈꾸는 잡다구리 2020. 12. 19.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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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 - 소설과 영화의 차이

 

1. 소설과 영화 <닥터 지바고>가 갖고 있는 각각의 특징

 

 닥터 지바고는 소설과 영화가 다소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는 러시아의 방대한 설원과 라라라는 배우와 지바고의 사랑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전혀 낭만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원래 러시아 소설들은 남녀 간의 애정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반면에 닥터 지바고에서는 남녀간의 애정 문제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애정 문제가 소설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소설에서는 혁명, 공산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또한 인물들의 내면 묘사가 잘 들어나지 않아서 지바고가 어떻게 라라를 사랑하게 됐는지, 토냐와 지바고가 어떻게 결혼했느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단지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란 토냐와 결혼을 하게 되고 전쟁터에서 갑자기 라라와 사랑을 하게 된다. 이렇게 내면 묘사보다는 지바고를 통해서 혁명이 지바고를 어떻게 옭매여 가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즉 소설에서는 러시아의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소설에서는 작가가 직접 겪었던 혁명과 내전 전후 20여 년의 역사와 시대 상황, 역사와 개인의 운명적 갈등, 남의 여자를 사랑했던 경험, 우랄 지방에 채류했던 경험, 인물들의 세계관으로 표현되는 깊이 있는 철학을 닥터 지바고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내면 의식에 대한 묘사보다는 지바고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공산주의의 비판의식이 주된 내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딱딱해질 수 있는 내용을 지바고의 사랑 때문에 겪는 갈등을 보여줌으로써 흥미를 증가시킨 것 같다.

 

 반면에 영화에서는 소설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소설은 사회비판적이였다면 영화는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된다. 또한 러시아의 설경 또한 아름답게 표현된다. 즉, 소설에서의 비판의식보다는 지바고가 겪는 사랑에 대한 내면 갈등과 러시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더 비중을 두었다. 라라와 토냐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공산주의 때문에 겪는 문제점이나 혁명에 대한 모습보다 비중을 둔 모습을 영화 전반에 볼 수 있다. 지바고가 전쟁터에서 돌아왔을 때 자신의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 그것은 주된 것이 아님은 영화에서 보여준다. 만약 소설에서처럼 혁명으로 인해, 공산주의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박탈당하는 것을 중점으로 했다면 영화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더 오래 영상을 비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한 면은 짧고 나오는 비중 역시 적음을 볼 수 있다. 빨치산에게 끌려가는 지바고 부분 또한 빠르게 지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소설처럼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 중점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지바고가 고뇌하는 두 사람사이의 갈등이다. 영화에서는 지바고가 겪는 가정에 대한 사랑과 한 여인에 대한 사랑 속에서 겪는 고뇌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2. 소설 <닥터 지바고>에 담겨진 시대상과 작가의식

 닥터 지바고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라는 러시아 작가가 쓴 소설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고 싶었습니다.” 그는 닥터 지바고의 집필 동기를 이같이 밝혔다. 러시아의 격동기를 살아가며 역사의 중심에서 벗어나 시와 번역으로 한 평생을 일관했던 삶을 뒤늦게 후회하고 역사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어린시절 말을 타다가 떨어져 평생 다리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1차 세계대전중에 병역을 면제 받고 우랄 지방의 군수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1914년 ‘구름 속의 쌍둥이’가 처녀 시집이며 3년 뒤 발간된 시집 ‘나의 누이 나의 삶’으로 시인으로서 독자적인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1934년 소련 내의 모든 문학단체가 해산되고 소비에트 작가 동맹이 결성돼 창작에도 사회주의적 원칙이 선언되자 그는 모스크바 근교의 시골집으로 이사해 9년동안 침묵을 지키게 된다. 그는 의식적으로 혁명이나 사회주의 건설을 찬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비판했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상징주의자, 형식주의자, 탐미주의자 심지어 배신자로 낙인 찍히게 된다. 1945년 그는 모스크바 근처의 페레젤키노 별장에서 닥터 지바고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닥터 지바고의 시대적 배경은 1905년의 러시아 제1차 혁명과 1917년의 10월혁명, 그리고 그 혁명이 현실화되어가는 시기다. 작품에서 작가 자신의 분신으로 유리 지바고를 보여준다. 그는 러시아가 붕괴되고 사회적 혼란 속에서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고 비극적인사랑을 체험한다. 이러한 유리 지바고는 러시아의 인텔리 계층을 대표하게 한다. 파스테르나크는 1917년 10월혁명과 적군과 백군간의 피비린내 나는 내란을 냉정하고 객곽적인시각으로 보았다. 이런 시각은 혁명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회의적인 견해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닥터 지바고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내포한 작품으로 느껴지게 된다. 파스테르나크는 지바고를 통해서 러시아의 붕괴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상황속에서 실제로 피부로 겪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려고 했던 것이다. 파스테르나크는 러시아 사람들이 자신을 추방하려고 하지만 탄원서를 내면서까지 러시아에 남으려고 했다. “나의 출생, 생활과 일은 러시아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러시아를 떠난 내 운명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조국을 떠난다는 것은 나로서는 죽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이같이 엄한 조치를 취하지 말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그는 러시아를 사랑했던 것이다.

 

3. 영화에서의 배경


 영화속에 나오는 설원은 상당히 아름답게 비춰어 진다. 지바고가 사투를 벌이며 걸어가는 설원에서 조차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바리키노에 집과 설원의 풍경은 너무 아름답다. 순백의 이미지를 한껏 뽐내는 것 같다. 하지만 닥터 지바고에서는 설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바리키노에서 봄이 오고 노란색 꽃이 만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설원이 초원으로 변하게 된다. 또한 지바고가 기차 여행을 할때에도 어지없이 러시아의 아름다운 설원이 나타난다. 기차의 외벽이 얼어 붙어서 얼음이 될 정도의 추위를 보여주기도 하고 지바고의 눈을 통해서 러시아의 설경을 보여준다. 눈이 내리는 모습이 아름답게 비춰진다. 또한 러시아의 침엽수림도 볼 만하다. 닥터 지바고에서는 눈이 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빨치산에 끌려간 지바고를 보여 줄 때에도 강이 얼어 붙어 그위로 지나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닥터 지바고에서 나오는 러시아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러브 인 시베리아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이 영화도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로 아름다운 러시아의 배경을 잘 나타난다. 닥터 지바고가 눈이 내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다면 러브 인 시베리아는 시베리아의 도시의 아름다움과 드넓은 평원의 푸르름이 아름답게 비춰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4. <닥터 지바고> 줄거리


거대한 수력발전소의 소장실에서 조카를 찾는 `예프그라프 안드레예비치 지바고' 장군과 `토냐 코바로바' 라는 여자아이의 대면에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어릴 때 양친을 잃은 유리 지바고는 자기를 돌봐준 은사의 딸 토냐와 결혼하여 명성을 얻는다. 어느날 무도회장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오던 `코마로프스키'라는 이름의 돈많은 변호사와의 관계를 청산하고자 라라 라는 여인은 방아쇠를 당겨 버리고 유리는 의사로서 그 변호사의 생명을 구해준다. 제1차세계대전을 겪게되고 지바고는 군의관으로 참전하면서 운명의 여인과 다시 만나게 된다.혹독한 추위와 절망속에서 둘은 어쩌면 서로에 대한 감정을 억누른채 보내면서 전쟁은 끝나고 애틋한 이별을 한다.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유리의 가족은 장인의 고향마을 바리키노로 낙향하게 되고 드넓은 벌판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곳에서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보내게 된다. 이곳에서 지바고는 다시 시를 쓰며 안정된 나날들을 보내지만 지바고는 따분함을 느낀다. 가끔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기위해 읍내격인 유리아틴에 나가보지만 때론 무료함으로 따분해 하는 지바고에게 어느날 부인 토냐는 우리아틴에 가면 도서관이 있으니 그곳에 다녀오라고 한다. 책을 구하기 위해 들른 도서관에서 운명의 여인 `라라'를 만나게 된다.둘의 격한 감정은 불륜이 되어 버린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괴로워 하던 유리는 라라에게 헤어질 것을 과감히 선언한다. 몇가지 약품을 구하기 위한 핑계로 라라를 만나기 위해 유리아틴으로 말고삐를 당기는 지바고 앞에 나타난 적군파 파르티잔들이 그를 납치하고 유리는 이제 빨치산 군의관으로 끌려다니게 된다. 빨치산들과의 오랜 군의관 생활 속에 결국 유리는 그들에게서 도망치는데 성공하고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을 겨디며 유리아틴을 찾았지만 바리키노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듣고 본능적으로 걸어간곳은 라라가 살던 집이다. 라라의 극진한 간호로 건강을 회복한 유리는 라라와 함께 변호사 코마로프스키를 피해 다시 바리키노로 떠난다. 저택을 둘러싸고 울어대는 늑대들의 긴 울음소리는 두 사람은 걱정을 한다. 코마로프스키는 또 이 먼곳까지 찾아왔고 그의 끈질긴 협박같은 설득을 유리는 받아들이게 된다. 코마의 마차를 탄 그녀가 점점 멀어져가자 유리는 황급히 2층으로 달려 올라간다. 그리고 너무낡아 열리지 않는 창문을 깨고 조금이라도 더 보고싶은 사람의 모습을 가슴에 담기위해 안타까운 심정으로 내다보지만 라라를 태운 마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창백한 얼굴의 유리 지바고는 당원인 형이 마련해준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전차에 몸을싣고 갈 때 차창밖에 라라의 얼굴을 본다. 유리는 라라를 부르지만 결국 죽고 만다.

 

5. 이상주의자 대학생 파샤


 라라의 남편으로 등장한 파샤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 과정을 마치고 지성인 된다. 하지만 혁명 정신에 몰두하며 가족을 떠나 전쟁에 자원한다. 하지만 왜 떠나는지 자세히 알 길이 없다. 단지 파샤가 전쟁터에 자원할 때 가정에 불만이 있든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를 볼 때 파샤는 자신의 혁명 정신이 가족과 가정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방법이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파샤는 죽을 위기를 넘긴 후 위대한 혁명가가 되어 돌아온다. 그는 당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혀 결국 자살을 하게 된다. 그는 혁명 과업을 완수하겠다는 환사에 사로잡혀 결국 평생 라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라라가 원한 것은 업적이나 명예가 아니라 파샤 자신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파샤는 화려한 업적을 선물하기 우위해서 라라를 피해 다닌다. 파샤 또한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불행한 사상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상당히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파샤가 나올 때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젊은 대학생 사상가였다. 때묻지 않은 모습이 보이고 자신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사상을 퍼트리다 위험하게 되지만 그런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모습은 전쟁에 참가한 파샤에서도 나타난다. 지휘관이 아무리 외쳐도 신경도 쓰지 않지만 파샤가 외치며 달려나가자 사람들이 달려나간다. 파샤는 이미 선동가로서의 자신을 변화 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속에서 아직까지는 자신의 자신감과 함께 민중을 위해 자신이 나서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다시 스크린에 나타난 파샤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완장을 차고 높은 계급을 가지고 있는 듯 해 보였다. 파샤의 열정적인 눈 대신에 간사한 눈으로 바뀌었고 자신감과 강한 의지 대신에 오만과 비웃음만이 그의 모습을 나타냈다. 파샤의 순수한 모습이 더 이상 사라진 것이다 .사상가로서의 파샤가 아니라 고위 간료의 파샤로 변화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코마로프스키에게 파샤의 최후를 듣게 된다. 결국 자신의 이상을 찾아 힘쓰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변질과 함께 주변의 모함으로 자살을 하게 된다.

 

6. 발랄라이카에 나타난 의미


영화에서는 상당히 발랄라이카에 대해서 많이 나온다. 주로 배경 음악을 나오는 이 발랄라이카는 라라와 토냐를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발랄라이카는 삼각형의 몸통을 가진 류트계의 악기이다. 몸통은 평면의 겉판과 불룩한 뒤판으로 되어 있다. 기타와같은 프렛이 있고 현은 3현의 가트선 또는 금속선이고 플렉트럼으로 만돌린처럼 연주한다. 17세기 러시아의 민속 악기 돔라에서 본리 개량되어 주로 농민의 가무 반주에 사용되었다. 영화에서는 라라의 테마라는 이름으로 발랄라이카가 연주된다. 눈발이 흩날리는 초겨울 벌판, 공동 묘지에 젊은 엄마를 땅에 묻는 어린 지바고, 고개를 들어 잿빛 황량한 하늘로 시선을 던질때 밤바람에 유리창을 때리는 마른 나뭇가지 소리가 들릴때 시베리아의 설원을 혼자 걸어갈때, 바리키노에서 성에 끼어 얼었던 유리창이 봄햇살에 녹을 때, 촛불 아래서 시를 쓸때. 발랄라이카는 혼자인 지바고의 모습일 때에 연주됐다. 또한 고독한 지바고의 모습에도 연주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발랄라이카가 러시아의 농민의 가무 반주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미루어 발랄라이카가 연주되는 시기는 지바고가 농민처럼 고통받고 힘들어 하는 시기가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힘든 일이 없을 때에는 발랄라이카가 연주되지 않는다. 하지만 심적으로 고통받고 힘들어 하는 순간에는 여지없이 발랄라이카가 연주되었다. 이것은 러시아의 민중적 고통을 지바고를 통해서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된다. 혁명 때문에 고생을 하게된 많은 농민들이 발랄라이카를 통해서 삶의 애환을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7. 시인으로서의 닥터 지바고


 지바고의 직업은 의사인데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의사의 이미지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도 의사인 모습보다는 시인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사라고 하면, 감정이 메마르고 냉정한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지바고는 오히려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의 감수성 때문에 혁명에 동참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낯선 마을에서 한 늙은이가 요즘 같이 혼란스런 세상에는 의사 따위의 직업이라고 속이는 게 편하다고 충고한느 것처럼 전문기술을 가진 사람이 혁명에 휘둘기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지바고는 밥을 먹기 위해 살기 위한 직업이었을 뿐 아무런 애착을 가지지 못한다. 영화에서도 지바고가 애착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바고는 자신의 시에 대해서는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시가 비난을 받자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인인 지바고는 혁명 정신에 위반되는 행동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서는 결국 모스크바로 간 후 갑자기 등장한 이복 동생의 도움으로 시를 쓰게 된다. 이런후 재혼을 하고 잘 살다가 심장마비로 죽게 된다. 영화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시인인 지바고은 파스테르나크 자신을 나타낸 것이다. 자신이 쓰지 못했던 시를 끝까지 쓰는 지바고를 파스테르나크는 부러워하면 작품을 지었을 것이다. 그만큼 시인에 대한 애착을 가진 파스테르나크는 지바고를 자신이 하지 못한 대리물로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 것이다. 또한 시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고자 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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