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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데미안 - 줄거리부터 인물, 역사, 문학사조 모든 것

Book/소설

by 꿈꾸는 잡다구리 2020. 12. 19.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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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데미안 - 줄거리부터 인물, 역사, 문학사조 모든 것

 

데미안
국내도서
저자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 안인희역
출판 : 문학동네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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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전기 비평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남독일 슈바아멘의 작은 마을 칼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는 북독일계의 러시아인으로 선교사였다. 외조부 헤르만 군데르트는 영어, 프랑스어는 물론 산스크리트어, 벵갈어 등 30여 개 어를 구사하는 뛰어난 분으로 헤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헤세는 어린시절부터 다루기 쉬운 조용한 성품이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가 기록한 일기에 의하면, 3살 때부터 남다른 체력과 지력을 갖추고 있어서 부모들의 속을 태웠다고 한다.4살도 채 못 되어 오늘날의 유치원과 같은 어린이 학교에 들어갔으나, 이대 벌써 선생님과 충돌이 있었다. 헤세는 감독이니 권위니 하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성품을 갖지 못했다. 헤세가 학교를 싫어하게 된 것은 그의 고집스런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엄격하고 획일적인 교육의 탓도 컸다. 아무튼 학교라는 틀은 그의 성격에는 걸맞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늘 이상야릇한 충동이 악마처럼 맴돌았으며 그의 부모들은 그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해야 만했다. 마음 한 곳의 울적한 응어리를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한 헤세가 자신과 어머니를 괴롭히고, 나아가서 선생님에게까지 충돌을 일으킨 것도 천성적인 그의 맘속에 내재한 충동 때문인지도 모른다. 10살 때에 라틴어 학교에서 1년 동안 공부한 후 바올브론 신학교에 목사 지망생으로 입학했다.<수레바퀴 밑에서>란 작품에 거의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듯이 이 중세적인 수도원 학교는 감수성이 강하고 자유분방한 소년에게 견딜 수 없는 곳이었다. 신학교 특유의 엄한 규율과 분위기에 절망한 나머지 1년 만에 도망쳐 나왔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 공부에 열중했으며, 동급생가운데서 시를 낭독하면서 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존경하는 마을브론 식학교의 바우어 교장은 엄하면서도 유모가 있는 참다운 교육자로 헤세는 그를 존경했다. 단지. 그 마음속의 폭풍을 이기지 못해 신학교를 뛰쳐나오고 나서 그는 방황의 길로 들어선다. 15살 때 김나지움(인문 중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고전 과목에서는 뛰어난 성적을 얻었으나 수학과 물리학과 같은 과목은 따라갈 수 가 없어 교사들의 눈총을 받곤 했다. 학업에 흥미를 잃은 그는 밤늦게까지 놀아나기가 일쑤였고, 그 결과 빚을 지기도 했다. 이때 하이네와 투르게네프를 탐독하며, 시작을 유일한 구원으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 11개월 만에 여기서도 퇴학을 당했다. 그는 광자나 다름없었다. 교과서를 팔아 권총을 사는 등 안정되지 못한 생활을 하는 한 편 자살 소동까지 일으켰다. 결국 그는 퇴학을 당했으며 방황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당시 헤세는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겪는 고뇌로 희망을 잃고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오직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만이 그를 지켜주고, 파멸에서 구해 주었다. 그는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17세 때 철공장의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그 나이또래의 애들이 신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국비 공부를 하는 동안 그는 땀 흘려 일해야 하는 가련한 처지로 내 몰리게 되었다. 189510, 18세 대 대학촌 튀벵겐의 헤겐하우어 서점에서 일자를 얻었다. 남들처럼 마울브론 신학교를 졸업만 했더라면 튀벵겐의 신학부에 들어가 국비로 공부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헤세는 그 속 학생들에게 책을 파는 하찮은 견습 점원의 신세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매일 10시간에서 12시간, 진종일 서서 책을 팔고 짐을 꾸리고 발송을 하는 하면 고서를 정리해야 했다. 그의 진지한 문학 수업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누이로부터 영어를 배우고, 아버지의 서가에 꽂혀있는 세계명작을 읽기 시작했다. 헤세는 하루의 고된 일과가 끝나면 애써서 책을 읽었다. 그중에서도 괴테의 책을 애써 읽었다. 작은 문학회에서 활동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는 이 곳에 서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고 시와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 처녀시집 <로맨틱한 노래>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4년 후인 1899년이다.

 

1899년 그의 나이 22세 때 자비로 산문 소품집<한밤중의 한 시간>을 출판하고 가을 무렵에 바젤의 라이히 서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후 스위스의 각지를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히기 위해 이탈리아 행을 결심하고 24세 되던 1901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25살 때 그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 마리가 사망하면서 그는 큰 슬픔에 빠져 지낸다. 그 슬픔으로 그는 두 번째 이탈리아 행을 결심하고 다니던 라이히 서점을 그만둔다.1904년 그가 27세 땡에 발표한 <페터 카멘친트>라는 장편소설이 나오면서 그는 명실 공히 작가로서 등단하게 된다. 이 작품은 출판되자 큰 반향을 일으켜 신진작가의 선두에 서게 된다. 그 해 9세나 연상인 마리아 베르누리와 결혼하고 라인강변 근처에 있는 농가를 빌어 자연을 벗 삼아 창작에 몰두했다. 그러나 부인과 사이가 나빠져 권태를 느낀 그는 싱가포르, 수마트라, 실론 등을 여행한 1911년부터 유럽 각지를 떠돌며 작품을 쓰는 다채롭고 험난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29살 때 피셔 서점에서 <수레바퀴 밑에서>를 출판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과거 신학교시절의 방황하던 자신을 한스라는 인물로 그려내었다. 1914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헤세는 독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개전과 함께 베를린 영사관에 출두하여 병역을 지원했으나 신체 조건상 군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말았다. 처음 그는 이 전쟁이 독일로서는 불가피한 전쟁이라고 보고 심적으로 독일 편에 섰으나, 8월에 들어서면서 독일 군이 벨기에로 침략해 들어가자 독일정부에 대해 비판적 자세로 돌아섰다. [1차 세계대전(1914~1919)]독일 학자와 작가들이 편협한 애국주의를 내세워 적국 타도를 선동하는 언동에 광분하는 자태를 보이자 헤세는 1914113<새 취리히 신문><친국이여, 제발 그쳐다오!>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러자 독일 인문계는 헤세를 조국의 배반자, 얼치기라고 매도하고 비난과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독일 포로 위문 사업에 너무나 헌신한 결과 헤세는 과로하여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셋째 아들 마틴이 뇌막염을 앓아 수년간 그 간호도 겸해야 했고, 1916년에는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아내 마리아의 정신 질환은 악화되어 1918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헤세 자신도 노이로제에 걸려 1916년부터 자주 루페른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헤세의 대표작인 <데미안>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발표되었다. 무면의 신인 싱클레어는 베를린 시의 '폰타네 문학상'을 수여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헤세가 실제 작자임이 밝혀지자 상은 회수되고 <데미안>은 헤세 작으로서 정식 간행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독일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시민이요, 조국을 배반한 작가로 낙인찍히게 된다. 나치스들의 집요한 박해와 추적을 견디어내지 못하고 결국 그는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1923년에 영원한 스위스 국민이 된다. 35세가 되기까지 그는 중편<차안>,<돌아서 가는 길>,<이웃들>을 출판했으며 시집<도상>을 출판했다.

 

191236살의 나이에 인도기행문 <인도에서>를 출판하였다. 이듬해 화가 소설 <로스할데>를 출판했으며 7,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1919년 종전될 때까지 베른의 독일 포로 위문 사업국에서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곳 체험을 바탕으로 신문에 전쟁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여 저널리즘의 맹렬한 공격을 받아, 출판금지 및 저서 판매 금지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몰렸다. 그는 같은 계층의 지식인들로부터 반역자, 변절자, 매국노라는 지탄을 받았으며 생활고와 정신적인 압박으로 몹시 허약해졌다. 191538살의 나이에 소설<크놀프>와 소설집<길가>,시집<고독한 자의 음악>을 출판하였으며 절친한 교우 로망 롤랑의 방문을 받았다. 이듬해 아버지 요한네스가 사망했으며, 막내 마르틴이 중병으로 몸져눕고 아내마저 정신병이 악화되면서 헤세는 극도의 정신적인 장애에 시달린 나머지 정신 분석의인 랭의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헤세는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 분석에 관한 책에 몰두했으며, 이해 단편집 <청춘은 아름다워>를 출판했다. 191942세의 나이에 <데미안>을 에밀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발표했으며 이 소설에 주어진 폰타네 상을 사양했다. 수상집 <작은 정원>,동화집<메르헴>,평론<차라투스트라의 재래>를 출판했다. 이 해 가족과 헤어져 남스위스의 몬타뇨라로 옮겨 이후 그 곳에서 안주하면서 갑자기 화필에 손을 데기 시작했다. 그는 그 후 자신의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192245세의 나이에 <싯다르타>를 출판하면서 동양의 정신세계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게 된다. 그 이듬해 별거중인 마리아 부인과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 봄부터 정기적으로 취리히 근교에 있는 바덴 온천에 갔다.192447세의 나이에 스위스 여류 작가의 딸인 루트 벵거와 결혼을 한다. 그 후 그는 토마스 만을 방문하거나 겨울엔 취리히에서 거처하면서 왕성한 창작을 한다.1933년 독일이 나치스 시대로 접어들기 전까지 그는 장편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동방 여행>을 출판했으며 단편집<작은 세계>와 시집<밤의 위안>평론집<세계 문학 안내>를 출판하는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헤세는 40세가 되면서 매일 그림을 그리다 시피하면서 소일했다. 헤세가 주로 그린 것은 루가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스위스의 평온한 시골풍경과 몬테뇰라 근교의 자연 풍경이었다. 헤세의 그림에는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나 동물이 없다. 그가 그런 대상을 그릴 줄 모른다기보다는 인간에 지치고 인간세계에 염증을 느낀 그가 인간을 화면에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변함없이 묵묵히 다정히 서있는 나무며, 떠가는 구름이며, 파랗게 빛나는 호수를 그렸다.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가 독일 미술계를 풍미할 무렵 헤세는 당신의 시대상황과는 달리 동화나 유토피아적 꿈과 환상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었다. 헤세는 그림을 통해 현실을 잊었으며 현실을 극복하였다.

 

1934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그는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굽히지 않는 전쟁에 대한 반대와 순수한 인간에의 사랑, 내면의로의 탐구,그는 결국 나치스에 의해 '바람직스럽지 않은 문학'으로 인정되어, 종이 배급을 정지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호구책으로 그림을 팔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커다란 정신적인 전환기를 맞게 된다.50세 무렵 헤세는 이전의 생활에서 탈피할 전환점을 찾게 되었다. 헤세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 자신과 주위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처해 나갔다. 그 가장 큰 동기는 리논 역사와의 결합이었다. 헤세로서는 세 번째인 이 결합으로 비로소 성실하고 행복한 부부생활을 이룰 수 있었다.헤세는 몬테뇰라의 새집에서 은둔자 생활을 하며 이해심 많은 니논 부인의 따스한 애정과 배려로 테신의 자연에 침잠하여 시와 소설을 쓰고 수채화를 그리면서 노년의 안정을 찾아 조용한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살육과 학살과 전쟁의 포화로 유렵전역이 불타오를 때, 그는 은둔자로서 순수한 이상향을 구축한다. 전쟁의 포화가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을 때, 그는 꽃을 심고 밭을 일구면서 조용히 순수한 인간성회복을 조심스럽게 갈구하였다. 이 암흑기에 그는 거작<유리알 유희>를 집필한다. 그의 필생의 대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유리알 유희>를 쓰면서 그는 매일 호수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품에서 밭을 일구는 은둔자로서 대작을 낚아 올리기 시작했다. 1943년 그의 나이 66세에 대작<유리알 유희>를 출판했다. 이듬해 세계 2차 대전이 종전되었다. 1946년 작품이 독일에서도 출판되었으며 이 해 8, 2 차 세계 대전 후 최초의 괴테 상을 수상, 가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베른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그의 나이 75세 되던 해 곳곳에서 그를 위한 축하 행사가 열렸으며 그는 그간 자신이 쓴 책들을 집대성했다. 1962년 향년 85세의 나이로 몬타뇨라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루카노 호반의 성 아본티오 교회묘지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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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S. 프로이드, C. G. 융 등의 정신분석 및 심층심리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데미안} {클링소어의 마지막 여름} {요양객} 등의 역작을탄생시키는 한편, 인도의 지혜에 심취하여 그 정신이 깃들인 {싯다르타. 인도의 시()}와 같은 동양적 작품을 쓰기도 한다. 여기에서도 작가는 밝고 어두운 두 개의 세계와 양극적 단일성에 관한 신-악마적인 상징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였으니, 즉 선과 악을 함께 포괄하고 있는 새로운 신 "아브락사스",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을 동시에 지닌 에봐부인 등이 그 예이다. 특히 {싯다르타}에서는 영원한 변화와 통일의 상징인 물을 통하여 우주만물의 단일성을 투시하고 각성 하는 과정을 동양적 정신에 따라 구현하고 있다. 후기 현대인들의 성서가 되어 있는 {황야의 이리}에서는 동물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를 한 몸에 지닌 주인공 하리 할러가 환각제를 피우고 째즈음악을 들으면서 미친듯 춤을 춤으 로써 팽팽했던 정신적 긴장을 해소하게 되고, 마술극장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전일 성을 사징하는 [불멸인(不滅人)]의 세계로 몰입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다음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양극적 대립성을 두 인간, 즉 정신과 이성의 대변자인 나르 치스와 자연과 사랑의 대변자인 골드문트에 구체화시켜 우주만물의 양극성을 나타내는 동 시에 이 대립적 존재가 합하여야 비로소 완전한 하나가 된다는 조화로운 합일을 묘사하고 있다.

 

2. 심리주의비평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정신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을 선하게 하려고 하지만 크로머롤 인해서 쉽게 악의 길로 들어서서 자포자기하고 만다. 그후로 방탕한 생활을 하게된다. 하지만 데미안이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악의 구원받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의 추악함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베아트리체를 자신의 여신상으로 만들어서 그녀의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결국 여성도 남성도 아닌 얼굴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얼굴은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인 데미안이었다. 그러면서 데미안을 그리워한다. 자신을 크로머로부터 구해주었던 것처럼 자신의 방황을 구원해줄 구세주로서 데미안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후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고 그의 어머니인 에바부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에바부인에게서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싱클레어는 다시 한번 진정한 여신상을 찾게 된다.

 

데미안은 개인무의식을 다루고 있다. 싱클레어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싱클레어는 중상층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기독교집에서 자라난다. 하지만 세상은 자신의 집처럼 성결하지 못하다. 그것을 통해 싱클레어는 이중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되고 선과 악에 대해서 갈등하게 된다. 그로 인해 인간의 양면성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심성을 이분해 버리고 자신을 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나 에바부인처럼 자신의 여신상을 만든다. 이것을 통해 싱클레어는 오이디프스 콤플렉스와 같은 증상을 볼 수 있다. 자신을 지켜주고 보듬어줄 여성을 찾는 것이다.

 

3. 형식주의비평

 

- 갈래 : 장편 소설. 성장 소설. 교양 소설

 

- 성격 : 자전적, 심리주의적, 종교적, 상징적, 신비주의적, 내면 탐구적

 

- 경향 : 헤세의 작품 경향은 전후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기에서는 '페터카 멘찐트','사랑 의 3중주', 등 서정이 넘치는 작품을 썼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을 겪은 후 그는 자아 탐구와 더불어 현대 문명의 준엄한 비판자가 되었다. 이 두 작품의 분기점을 이루는 문제작이 '데미안'이다.

 

- 문체 : 간결체

 

- 배경 : 시간(1차 세계 대전 전후). 공간(독일)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제재 : 나의 성장 과정

 

- 주제 : 자기 발전을 통하여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

 

- 구성 : 서장과 8장으로 되어 있다. 1-2장에서는 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소박하고 감상적으

로 그려 먼 훗날의 인생의 흐름을 함축성 있게 암시하고 있고, 3장에서부터 독심술의

꿈의 해석이 수시로 인용되고 신비로운 환상적 여운이 전편에 흐른다.

- 표현 : 작자의 젊은 시절의 초상이라 할만큼 영혼의 성숙 과정을 자전적으로 그려냈다. 신 비주의적 동양 정신이 담겨 있다.

 

 

- 줄거리 : 싱클레어는 신앙이 깊고 청결하며 예의 바른 부모의 세계와 하녀·장인(匠人)들의 입을 통해 듣는 부랑자·주정뱅이·강도 등의 더러운 악의 세계가 자기의 내면에서 대립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바로 이때, 데미안이 건너 준 메시지를 받고 자기 의 식의 눈을 뜨게 된다. 싱클레어는 자기 운명을 개척하고 자신을 찾기 위해 유럽 문화를 철저하게 비판한다.

- 전체 줄거리 : 싱클레어는 신앙과 지성이 조화된 분위기 속에서 부모님아래에서 성장했다. 그의 가정은 말 그대로 밝은 세계이며 선의 세계이다. 또한 그 주위에 있는 아주 어두운 악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싱클레어의 어린 시절 그는 동네 놀이 집단에 끼기 위해 도둑질을 했다는 허풍을 프란츠 크로머에게 떨게된 다. 어두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어두운 생활을 하던 싱클레어는 데 미안을 만나게 된다. 데미안을 통해서 카인과 아벨이라는 새로운 해석으로 선과 악을 생각하게 되고, 데미안은 크로머를 만나 싱클레어를 옭아맨 올가 미를 풀어준다.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 속의 두 세계의 갈등으로 즉, 금지된 것과 허락된 것 의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베크는 그런 싱클레어를 술집으로 유혹 한다. 뒷골목의 어두운 모습, 시궁창의 풍경은 금지된 구역에 들어서게 되고 자기 소외와 자기 부정에 빠져 사회와 이사에 대해 아예 부정해 버린다. 그 는 베크와 함께 카인과 아벨 신화의 이중성, 성의 금욕주의, 연애감정에 대 해 생각한다. 다시 데미안을 만나고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타락한 모습에 우 려를 나타낸다. 싱클레어는 정신이 성을 갈망하는 육체를 통제하지 못하여 괴로워한다.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를 만나면서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 소용돌이치는 마음에 따라 그런 곳에서 벗어나게 된다. 싱클레어가 그녀의 초상화를 그린 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데미안을 닮아가고 있었다. 베아트리체가 아닌 남성 적이면서 여성적인 모습으로 변하여 마침내 데미안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 었던 것이다. 그는 그 안에서 어느새 데미안을 그리워하고 있다.

 

싱클레어는 지구에서 날아오르려고 하는 새를 그려 데미안에게 보낸다. 그리 고 데미안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날아가는 새, 먼저의 세계를 파괴하고 나온 새, 그리고 신 아프락사스에 관한 이야기 이다. 아프락사스는 빛과 어두움의 공존, 선신이면서 동시에 악신이라는 것 을 싱클레어는 알게 된다. 그는 데미안의 편지를 통해서 자기 내부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르간 소리에 이끌려 싱클레어가 어느 교회로 들어간다. 그 곳에서 그는 연 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나서 아프락사스에 대한 공감을 느끼고, 그에게 아프 락사스에 대한 가르침도 받게 된다. 싱클레어는 정신을 이끌어 줄 지도자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데미안을 길에서 다시 만난다. 데미안은 그의 어머니 와 함께 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재회.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이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여인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꿈, 운명, 탄생의 괴로움을 알려 준다. 싱클레어는 그녀에게 정신적인 사랑 과 육체적인 사랑을 같이 느끼게 되고 정신적인 사랑으로 생각한다.

 

그 때 전쟁이 터지고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함께 참전한다. 싱클레어는 부상 을 당하고 야전병원으로 옮겨지게 된다.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나란히 누워 있다. 데미안은 만약 언젠가 자신이 필요하게 되면 싱클레어 스스로의 내면 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어머니의 키스를 그에게 전한다.

 

다음날 아침 데미안은 옆에 없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친구 이며 지도자인 데미안과 꼭 같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본다.

 

-등장 인물

 

싱클레어 : 독심술(讀心術)에 빠져 인간의 영혼에 대해 회의를 품고 방황하는 소년

 

막스 데미안 : 에바 부인의 아들로 개성이 강하고 성숙하여 싱클레어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인물.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순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다.

 

프란츠 크로마 : 양복점 아들로 성격이 거칠고 악의 상징 같은 존재

 

크라우어 : 싱클레어의 동급생으로 섹스와 금욕에 고민하다가 자살 미수까지 저지르는 인물

 

내용 연구

 

내가 그린 꿈 속의 새는 친구를 찾아 냈다. : 꿈 속에서 준 새의 그림을 데미안에게 전해 주는 과정을 새가 여행을 떠난 것으로 표현하였다.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읽는 동안에 내 심장은 오싹하게 움츠러들었다. : 읽은 내용이 자신의 운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 새는 새로운 세계를 의미하고, 알은 갇혀 있던 기존의 세계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않으면 안 된다. :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자는 자기가 전에 속했던 세계를 비판하고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다.

나는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읽은 적도 없었다. : 전대미문(前代未聞)

아프락사스 : 보다가 진보가 이루어진 세계로 이상 세계를 의미

헤로도투스를 읽고 있었다. : 헤로도투스(Herodotus)B.C. 484425년에 살았던 그리스의 사학자(史學者). 이 구절의 뜻은 헤로도투스의 저작을 읽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수사법은 대유법이다.

눈초리와 생각만으로도 - 느낄 수가 있었다. : 자신의 생각에 몰두하는 일을 의미

선생님의 말소리가 - 내리치는 바람에 : 스스로의 생각에 몰두하던 상황에서 선생님의 말씀이 갑자기 들려 왔다. 이것은 몰두하고 있던 대상 - 아프락사스 - 에 대한 일치 때문이다.

내 주의력도 다시 나 자신의 내부로 되돌아가 버렸다. : 주인공 싱클레어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나타낸 구절이다. 헤세 작품의 주인공들의 이와 같은 내면으로의 침잠은 무의식의 세계를 말한다. 이런 무의식의 세계는 심리학의 한 분야인 정신 분석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프락사스가 바로 그런 신인 동시에 악마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포괄하는 이 신은 끊임 없는 변화와 자연의 반항 속에서 창조적이고 지속적인 세계의 원칙으로서 군림하는 전우주적 존재로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인 신을 의미하고 있다.

성장 소설

 

교양 소설, 발전 소설이라고도 한다. 젊은 주인공이 인간적, 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받고 또 그 환경과 싸우면서 자기를 완성시켜 나가는 성장 과정을 그린 소설을 말한다. 주인공은 노력과 방황을 통하여 작자 혹은 그 시대의 이상상(理想像)에 적합한 어떤 과정에 도달한다. 이런 류의 작품은 가장 먼저 독일에서 발달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는 가장 전형적인 성장 소설이다. 또 켈러의 '푸른 옷의 하인리히',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플로베르의 '감성 교육' 등이 유명하다.

성장 소설은 주인공이 자기와 외계와의 관계를 서서히 깨달아 자기를 확립해 온 과정을 그린 것이지만 특히 주인공이 예술가인 경우에는 예술가 소설이라고도 한다. 로망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등이 대표적이다.

데미안 역시 싱클레어의 성장을 보여준다. 선과 악의 이분적인 구조에서 한가지를 선택하고 데미안을 통해 성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지주의(靈智主義/Gnosticism)

 

2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두드러졌던 철학적·종교적 운동으로 '영지주의'라는 명칭은 그리스어 '그노스티코스'('그노시스',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한 사람)에서 유래했다. 학자들은 영지주의 세계관의 기원을 이란의 종교적 이원론, 중기 플라톤 철학자들의 알레고리적 이원론, 특정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의 묵시적 사상에서 찾는다. 최초의 영지주의자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시몬 마구스이다. 그는 악이 신성의 내적 분열에서 생겼다는 영지주의의 근본 개념을 소개한 1세기 유대교 이단자였다.

영지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무의식적 자아는 신성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불행히도 타락했기 때문에 진정한 본질과 완전히 동떨어진 세상에 던져졌다. 사람은 위로부터 오는 계시를 통해서 자신의 기원·본질·초월적인 운명을 알게 된다. 영지주의적 계시는 이성의 힘을 가지고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철학적 계몽과 구별되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교 계시와도 구분되어야 한다. 영지주의적 계시는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으며, 성서에 의해서 전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자아의 신비에 대한 직관이다. 영지주의자들에 따르면 하느님은 이름이나 설명을 초월하는 심연과 침묵이고, 절대자이며, '플레로마', 즉 빛의 영역을 형성하는 선한 영들의 원천이다. 2세기 영지주의 분파들은 히브리와 그리스도교 종교 저서들을 사용하면서도, 영지주의의 의미들을 그것들과 구분하기 위해 알레고리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영지주의 집단은 학파를 구성하여 권위 있는 가르침들을 전수하고, 해석하며 비밀을 보존한 듯하다. 의식도 분파에 따라 달랐다.

 

이니시에이션 소설(initiation story)

 

다른 말로는 성장소설(成長小說), 통과제의 소설이라고 하고 주인공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 과정을 형상화한 소설을 말한다. 소설의 발단은 대체로 주인공의 지적(의식적) 미성숙, 사회적 지위의 미천함, 애정의 결핍 등으로 인한 증세가 갈등의 양상을 보이며 전개되다가 주인공이 이에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차원의 단계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자아의 세계에 대해 무지하거나 미성숙기의 주인공이 일련의 경험과 시련을 통해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을 부르는 말로, 브룩스와 워런이 '소설의 이해'에서 '살인자들', '나는 이유를 알고 싶다'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initiation'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소설의 한 유형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원래 이 말은 인류학적인 용어로서 '통과 제의'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이니시에이션 소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젊은이가 외부 세계에 대한 무지로부터 생생한 지식을 획득하기까지의 통과 과정을 다룬 작품이며, 다른 하나는 자아발견과 관련된 삶과 사회에의 적응을 다룬 작품이다. 두 가지는 모두 새로운 사실이나 악의 발견을 통해 주인공을 성인 사회로 유도해 간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헤밍웨이의 '살인자들', 윤홍길의 '장마', 이청준의 '침몰선', 황순원의 '소나기' 박완서의 '배반의 여름'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등은 좋은 예가 된다.

 

여기서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젊은 주인공이 성숙한 세계에 도달하도록 상반된 세계가 흔히 전제된다. 신화적 낙원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 순진과 성숙, 어둠과 밝음의 세계가 대립되며 선 - , - , - 죽음 등이 중심된다.

 

'데미안'에 대하여

 

독일 문학이라고 하면, 곧 괴테나 헤르만 헤세를 연상할 만큼 그들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작가들이다. 더욱이 현대 문학을 말할 때면 헤세를 두고서는 달리 얘기할 수가 없다. 그것은 그의 작가적 생리가 깊이 동양철학에 바탕을 두고 그 심층에 인간의 생명을 구도하려는 데서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때문이기도 하고 또는 그의 문학적 생애가 나찌 독일의 비판자로서 감수해야 했던 추방·망명 그리고 반전논자로서 현대 문명의 몰락을 직시한 예언자로서 어쩔 수 없이 고독과 방황을 감수한 시대의 유랑인이기 때문이며 그의 작품이 풍겨주는 서정성의 향수 때문이기도 하다. 소년시절의 동경, 청춘시절의 꿈과 방황, 넘실거리는 구름을 바라보며 도시에의 환멸, 문명사회를 달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랑아 페터(페터 카멘친트의 주인공)의 낭만 같은 것 -그런 것이 난해하고 재미나는 줄거리가 없는 독일 작품이라 하여 비교적 소외당하고 있는 이 땅에서 헤세만이 예외로 널리 번역, 소개되고 읽혀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헤세의 문학은, 그러나 반드시 구름과 꿈이 단김 작품으로 일관한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계보를 전·후기로 구별하면 전기의 작품이 앞에서 말한 서정적 애상이 넘치는 작품들이다. 대체로 그 대표작을 들어보면 페터 카멘친트(1904), 차륜 밑에서(1906), 게르트루트(1910), 그리고 크놀프(1915)로서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후기의 작품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벌써 1차 대전을 겪은 유럽은 그를 꿈의 작가로서 마냥 안락의자에 앉혀 두지 않았다. 그는 자아 탐구와 더불어 현대 문명의 준엄한 비판자가 되었다. 즉 자아성찰을 통한 싯다르타(1922) 현대 문명을 비판하고 유럽을 탄핵한 황야의 이리(1927), 그리고 두 영혼의 벗이 정신과 감각의 세계를 방황하다가 결국 어머니인 고향으로 돌아오는, 비교적 승화된 세계를 그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1930), 만년의 대작 유리알 유희(1943)가 서구적 정신과 도양적 정신을 승화시켜 새로운 정신문화를 구상한 이상소설이라 하겠다. 이 작품은 한결같이 문명 비판과 정신의 실향, 영혼의 방황, 문명의 몰락이 그 바탕이 되어 있다.

 

데미안은 이 두 작품 세계의 분기점을 이루는 문제작이다. 헤세는 이른바 초기의 작풍에서 후기로 전환하는데 데미안의 다리를 건너간 것이다. 누구도 데미안을 읽고 얼핏 그것이 헤세의 작품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의 초기 작품만을 읽은 독자에게 있어서). 그만큼 데미안은 헤세의 인간과 문학에 획점을 던진 것이다. 그 까닭인지 발표 당시 1년간은 에밀 징클라르 작 데미안, 어느 소년 시절의 이야기라고 익명을 썼다. 그 후 이것이 헤세의 작품임이 알려지자 구판부터 개제하여 데미안, 에밀 징클라르의 소년시절의 이야기라고 했다.

 

데미안은 이른바 과도기적 작품으로서 그 구성이 뚜렷하다. 12장에서는 그의 초기 작품과 같이 소년시절의 이야기를 소박하고 감상적인 수법으로 그려 놓아 먼 훗날의 인생의 흐름을 함축성 있게 암시한 것이 퍽 인상적이라 하겠다.

 

헤세는 이 무렵 아들의 병으로 인하여 정신분석에 정통한 의사와 친하게 지냈다. 그 인연으로 헤세는 정신분석에 흥미를 얻어 그것이 데미안에 도입되었다. 3장에서 비롯하여 독심술의 꿈의 해석이 수시로 인용되고 신비로운 환상적 여운이 전편에 흐르고 있었다.

 

소년 징클라르는 밝은 세계에서 성장했다. 양친의 신앙과 지성이 조화된 분위기 속에 살면서 점차 또 하나의 세계, 어두운 세계에 눈을 뜬다. 뒷골목의 어두움, 시궁창의 살풍경-그는 금지된 구역에 눈을 주는 본능을 의식한다. 그리하여 강자 본능적이고 환락적인 인간에게 얼결에 동화되고 엉뚱한 거짓말을 하여 수난하고, 두 세계의 갈등으로 뒷골목에서 술을 마신다. 그럴 때마다 그는 데미안을 생각한다. 데미안은 두 세계, 즉 카인의 세계와 아벨의 세계를 똑같이 알면서도 그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 자아의 세계를 혼자 걸어가고 있다. 데미안은 그를 교도하려 한다. 그러나 언제나 깊은 자아성찰을 요구할 따름이다. (송영택)

 

4. 신화, 원형비평

 

베아트리제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이름이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제는 여신상이었다. 데미안에서도 베아트리제는 데미안의 여신상으로 나온다. 이름도 어떤 것도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여신상으로 베아트리제라는 이름을 붙인다.

 

아프락사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술을 부리는 악마의 이름. 이는 그노스틱파(영지주의파)의 종교관에서 유래한 말이며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포괄하는 이 신은 끊임없는 변화와 자연의 반항 속에서 창조적이고 지속적인 세계 원칙으로서 군림하는 전우주적(全宇宙的)존재로 설명된다. 이 소설에서의 아프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인 신을 의미한다.

 

5. 사회, 윤리적 비평

 

헤세(Hermann Hesse)는 자아의 모든 위기적 요인과 세계대전에서 체험한 인간의 잔인성, 쾌락추구, 질서혼란 등의 모든 외적인 것들을 자아내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이 길을 가게된 것을 그의 생의 제 2차적인 변화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제 1차적 큰 변화는, 그가 13세 때 작가의 부름을 받고 작가의 길을 가게 된 것이라고 헷세는 말하고 있다. "나는 내 마음을 깊이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내 고뇌의 원인이 자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아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미친 짓이나 야만인의 행동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고 비난할 권리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 권리는 신조차도갖고 있지 않은데 하물며 내게 속했을 리도 더더욱 만무하지 않은가. 무질서는 바로 나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헷세는 말하고 있다.

 

이같은 자아내면으로 가는 첫 시도로써 그는 데미안 Demian을 내놓았다. 헤세는 이 작품 발표로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어 많은 새로운 독자층을 얻게 되었다. 새로운 독자층, 즉 패전주의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이 작품은 젊은이들에게 계속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데미안은 발표된 이후 많은 세월 지난 지금에도 헤세의 그 어느 작품보다도많은 관심의 대상인 화제작이다. 데미안 Demian이 작자 미상으로 세상에 처음 발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자가 누구인가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토마스 만은 출판사에 이 훌륭한 작품의 익명 저자로 되어 잇는 에밀 싱클레어 (Emil Sinclair)가 누구인가르 가르쳐 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이 외에 여러 사람들이 은밀하게 데미안의 작가를 알아보려고 노력을 했었다. 헤세는 당시의 지식층들에게 감동적인 충격을 주었다. 미국에서 만(Thomas Mann)1947년에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곧 이어 신비스러운 싱클레어의 데미안이 발산한 충격적인 내용은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시대의 핵심을 꿰뚫었으며 …… 모든 젊은이들을 정말로 매혹시킨 작품이다.

 

세계대전 후 모든 것이 파괴되고 황폐한 땅에서 아무 것도 제시해 주지 않은 상태에서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데미안을 통해 전쟁으로부터 주어진 외부 세계의 비정상적성과 야만성 그리고 모든 무질서를 작가의 내면으로 받아들여서,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책임을 진 한 사람으로서 그의 자가 내면의 길을 보여주고 잇다. 이 자아의 길은 자아를 스스로 존립케 하는 것이며, 자기 고유의 길을 인식케 하는 것이고, 마치 숙명처럼 긍정해야만 하는 길이며, 외부 세계의 무질서한 오류를 다른 사람에게서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찾겠다는 길이다. 헤세 스스로가 이 길을 꿋꿋하게 걸었다는 점에서 작품을 통한 그의 교육적인 면을 볼 수 있다. 데미안의 머리말에서 익명의 저자로서 그는 이 길을 걷고 있는 "한 시도자였고 지금도 그렇다"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저자인 그가 안내하고 있는 길은 헤세가 초지일관으로 그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인간됨의 길이다. 이 인간됨의 길은 헤세의 모든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관제로서 자문하고 또 제시한 인간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헤세에 의하면 인간은 조화를 이루어 완성된 하나로 단순히 파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의문시되어 왔던 문명세계의 현실은 그 본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이 현실의 본모습은 그에게 난폭적인 것으로 비춰졌다. 이 난폭적인 것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오랫동안 지켜왔던 규정들과 이상들은 거짓된 것으로 보였으며, 지금까지 표면적으로 질서 정연했던 것들이 무질서화되었고 생의 현실은 절망적인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혼돈된 상황에서 헤세는 자아 밖에서의 무질서의 원인에 대한비평이나 대책을 내세우지 않고 아주 격렬하게 자아 내면으로 심취하면서 전쟁 때문에 흐트러진 인간세상에 놓인 인간문제 내지 자아를 근본적으로 재검을 하게 된다. 이 재검의 길은 곧 그의 자아내면의 인간됨의 길이라 하겠다. 인간의 본질은 조화를 이룬 완성된 하나가 아니라 정신적 세계과 감각 본능의 세계와 두 대립 속에서 엮어지고 있는 논쟁물로 보게 된다. 인간은 단순한 조화 완성된 하나가 아닌 이 하나에로 향해 내던져진 대자연의 초안이라는 그의 주장은 데미안의 익명 저자의 말이기도 하다.

 

헤세는 데미안이 나오던 해인 1919년에 이미 베른(Bern)을 떠나 있었다. 실은 191812월에 벌써 그의 집안은 깨어져 있었다. 그의 아내는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요양소에 입원해 있었으며, 회복된 후에도 그와의 생활은 불가능했으며, 자녀들은 기숙사나 친지들에게 맡겨졌다. 이즈음 헤세는 1918년에 발표된 가을밤 (Herbstabend)이라는 시에서 그 당시의 쓸쓸했던 그의 모습을 잘 알려주고 있다.

19195월에 몬타뇰라(Montagnola) 왼쪽 편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한 아름다운 집을 발견했다. 이곳은 오랫동안 고독했던 그의 도피처로서 그는 또다시 은둔자가 되어 그의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 내면적인 세계로의 도피 속에서도 헤세는 자아 밖의 세계에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자아 밖 세상의 모든 무질서와 혼란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 밖의 물질문명 세계인 감각적 본능의 세계와 이와 반대되는 세계, 즉 정신 세계라는 두 대립된 세계를 받아들인 그의 자아는 자연적으로 내면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들 두 대립 세계로 인해 주어지는 자아 내면의 갈등은 부정적인 측면에서가 아닌 긍정적인 면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때문에 헤세 자아의 내면적 갈등은 긍정적 조화 완성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며 이 내면적인 갈등은 곧 자아 인간됨의 길이다. 도덕적인 대립의 두 세계인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에 던져지는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Sinclair)가 가고 있는 길은 다름 아닌 조화 완성된 하나에로의 길이다. 이 길에서 성공하기 위한 전제는 자아 내면에 있는 두 상반세계의 대립관계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며 이들 두 상반세계가 조하를 이루기 이해서는 이들 두 세계가 동시에 긍정되어야 한다. 이같은 동시동등 인정을 위해서 이들 두 대립세계를 포괄하는 힘이 존해해야 하는데, 이 힘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상반된 이들 두 세계 위에 군림한다. 이 동시동등이라는 자아 내면적 긍정의 길은 동양 음양학적인 측면에서 음양 두 극의 동시동등으 길이 되는 것이다. 악의 세계와 선의 세계에 던져진데미안의 싱클레어는 그의 자아 내면에서 이들 두 상반된 세계의 조화완성, 즉 인간 자아 완성이라는 과제를 더맡게 된다. 두 대립세계의 문제 해결을 위해 싱클레어에게 던져지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현실세계로부터 갖게 되는 자아의식이다. 이 자아의식은 그의 자아 밖에 존재하는 도덕적 가치의 두 대립세계, 즉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게 하는 양자 택일의 의식이다.

 

이같은 자아의식은 선과 악의 세계를 동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자아의식은 선도 좋고 악도 좋다는 판단의식이 결여된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악은 악으로써 선은 선ㅇ로써 판단되고 평가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립된 두 세계가 동시동등적으로 수용되지 않는 입장에서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작품 처음부터 자아의 궁극적인 조화, 즉 이들 두 세계를 같은 정도로 수용하려는 어려움을 가진다.

 

싱클레어가 이들 대립된 상반세계를 대면하게 되는 경로는, 머저 그는선의 세계를 그의 가족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10세의 라틴 학생이던 그는 도덕적 가치 척도에서 이 선의 세계가 정신적으로 밝고 선량하며 모든 것이 분명하고 정결함을 보게 된다. 다음으로 그는 악의 세계를 그의 주위에서 알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불결하고 선량하지 못하며, 이성적으로도 불손한 패들로 형성된 세계이다. 이 악의 세계로 어린 소년인 그는거짓으로 구며낸 도둑질 이야기 때문에 매이게 딘다. 즉 그는 어느 날 주위 불량배 어린이들에게 영웅심에서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는 이들 불량배 어리아이들에게 그가 이웃집 사과밭에 몰래 침입해서 사과를 따서 한 자루 가득 훔쳐 가지고 나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특히 자기보다 두 살 위이고 가정적으로 불우하고 불순한 소년인 프란츠 크롬머(F. Krommer)에게 자신이 말한 것은 진실이라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그는 신의 이름을 걸고 이에 대해 맹세까지 한다. 크롬머는 이 맹세를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음모를 꾸며서는 그에게 말하기를 과수원 주인이 사과 도둑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만약 싱클레어가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주인에게 고발하여 경찰에 넘기겠다고 위협한다. 그리고는 자기 아버지의 취직문제 알선, 싱클레어의 누나와의 데이트, 그리고 무리한 금전요구로 어린 그를 괴롭힌다. 이렇게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이 거짓으로 꾸민 이야기로 말미암아 더욱 악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이 궁지로부터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이 외적인 줄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주어진 싱클레어의 마음에서 일게 되는 내적인 자아변화이다. 그는 거짓으로 꾸며낸 자신의 이야기로 인해 악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자아 밖에서 주어진 어떤 우발적인 것이 아니고, 존재는 하고 있었지만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인 상태에서 자아내면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아내면 속에 있던 이 악의 일면에 충동이 가해짐으로써 극 거짓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내면에 숨어 있던 악의 면이 오직 가족적 환경을 지배하고 있었던 선의 세계에 억눌려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으로써 그는 악의 세계에 빠져들기 전에 언제나 이 악의 세계를비밀히 동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와 같이 그가 악의 세계를 그의 자아 내면에서 부정하지 않고 선의 세계와 함께 받아들이고 긍정함으로써 그는 이들 두 상반세계를 동시에 긍정하고 받아들이느 길에 서게 된다. 이 동시동등의 길, 곧 그를 자아 갈등의 기로 가게 하는 조력자로서 싱클레어의 연장자 친구인 데미안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데미안은 그에게 그노스틱(Gnostik)의 생각, 즉 신을 직관적인 체험의 세계에서 철학적인 인식의 사고로써 인식케 하려고 하고 이로 인해 자기 자신의 자아 본체를 형성하려는 생각을 주입시킴으로써 싱클레어 자아 내면에 있는 두 대립세계를 동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두 상반세계를 동시동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양요가법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이 동시동등에로의 길을 인도하는 희랍명의 신 아브라삭스를그에게 제시하고 있다.

 

아브라삭스는 그노스틱(Gnostik)파의 신의 이름으로 일종의 주문으로 사용되며 싱클레어에게 이 신은 상징적인 임무를 갖고 있다. 전혀 상반된 두 세계, 즉 신적인 선의 세계와 악마적 악의 세계를 다같이 동등하게 인정하며 일치시킨다. 이때 어느 한편의 세계에 자의적으로 일방적인 우위가 주어지지 않고, 이들 두 상반되는 대립세계가 동시동등으로 긍정된다. 이것은 곧, 신 아브라삭스의 임무이다. 싱클레어에게 가르친다. 마침내 데미안은 그의 어머니인 에베(Eva) 부인을 싱클에레어와 대면시킨다. 에바부인은 싱클레어가 내면으로 추구하는 자아의 두 대립세계를 조화 완성에로 통하게 하는 사랑의 길로 그를 인도하게 된다. 싱클레어가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큰 새의 모습으로 그에게 이 조화 완성의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랑은 두 면이다. 아니 단순한 양자결합 이상이다. 그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사랑은 천사이자 그림이고 또 악마이다. 남자와 여자를 한 몸에 담고 있으며, 사람이면서 짐승이고 가장 최상의 것은 선이고, 가장 최하의 것은 악이다. 이것을 체험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고, 이것을 맛보는 것이 또한 나의 운명이다." 라는 소리가 싱클레어의 내면을 향해 외쳐진다.

이처럼데미안의 싱클레어에게 주어진 상징적인 조화 완성의 길은 후기 헤세 작품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이면적인 자아발전의 준비과

 

정으로서 의의를 갖고 있다. 이 자아내면의 길은 결코 추상적인 잠꼬대 같은 길이 아니고 참된 자아인식의 길이며 현실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자아내면 발전의 길이다.

 

헤세가 제 1차 세계대전 후 내적·외적인 요인에 의해서 그의 작품 데미안이후 가고 있는 자아내면의 길은 보르토(O. F. Bollnow)가 그의 저서 불안과 은둔 Unruhe und Geborbenheit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과 같이 헤세 중니공들이 자아완성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내면의 길'은 또한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도 표현되기도 한다. 이 내면의 길은 독일 정신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내면의 길'에 관해서는 독일 신비주의의 초기부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마이스터 엑하르트(Meister Eckhart)에 의해 이것이 깊이 연구되고 있는데 이는무언의 형태로서 경건주의 (Pietismus)와 함께 독일의 정신 속에 흐르고 있다. 경건주의는 신의 체험을 신을 간절히 찾는 인간의 가슴 속에서 찾아서 종교적인 감정 유동의 개별화를 유도한다. '내면의 길'은 독일 낭만주의로 다시 이러진다. 낭만주의 시대의 노발리스(Novalis)에 의해서 가장 우아하고도 수결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노발리스는 그의 미완성 작품에서 "비밀에 가득한 길은 내면으로 향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헤세 또한 그의 작품에서 노발리스의 이 말을 마치 입력된 프로그램처럼 반복하고 있다. 노발리스는 그의 미완성 작품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 Heinrich von Ofterdingen에서 "우리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중의적으로 "언제나 집으로"라고 대답하고 있다.

 

노발리스의 이 말은 대단히 의식적으로 데미안에서 언급된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그를 상징적인 사랑의 길로 인도하는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베 부인에게 "얼마나 나는 기쁜가! …… 나는 지금까지 떠돌아다녔는데, 이제 집에 왔으니 ……"라고 말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싱클레어는 에베부인을 통하여 자아 내면의 조화에로 인도됨을 암시하고 있다.

 

후에 헤세는 이 자아 내면의 길을 1931년에 내면에로의 길 Weg nach Innen이라는 작품의 이름으로 표면화시키면서 그의 진로를 명확히 하고 있다. 작품 내면에로의 길4편의 이야기를 헤세가 모아서 출판한 것으로 이 책에는 데미안이후 쓰여진 싣타르타 Siddhartha, 1922, 어린 아이들의 마음 Kinderseele, 클라인과 바그너 Klein und Wagner클링소의 마지막 여름 Klingsors letzter Sommer 이 실려 있다. 싣타르타이외에 세 단편들은 클링소의 마지막 여름이라는 책명으로 이미 출판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헤세가 가고 있는 '내면으로의 길'은 자아 밖의 시끄러운 움직임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고유한 심저로 되돌아가서 고요한 안전으로 향하는 걸인 동시에 외부세계의 불안 때문에 잃은 세상 깊은 곳과의 연관성을 스스로 찾아가는 길이다. 또한 이 길은 인간의 본질, 곧 인간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길이며, 지금은 떠나 있어도 오직 이곳에서만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인간 본향에로의 길이다.

 

내면에로의 길'에는 여러 차례의 전기가 있는데, 우리들 모두의 근본적인 자아의 길인 '내면에로의 길'이 헤세에게 있어서는 그가 처한 시대 사조와의 대결로 나타나 여러 단계로 나누어지고 있다.

헤르만 라우쉬, 페터 카멘친트, 수레바퀴 아래서크눌프까지를 헤세 젊은 청년시절의 발전과정으로 보고 있으며, 데미안, 클링소의 마지막 여름,싣타르타, 요양객, 짧게 요약한 이력서, 슈테펜볼프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제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성숙단계를 보여주고있다. 여기서 자아 밖 현실세계와 대립하던 방황이 해결되는 과정이 보임으로써 이어지는 중간 단계를 거치게 된다. 결국에는 자아 밖과 자아 내면의 공통으로 추구하는 해결점을 발견하였음을 헤세는 그의 후기 작품 동방에로의 편력유리알 유희로 나타내 주고 있다.

 

'내면에로의 길'이 두 상반세계의 테두리에서 주어진 것은 데미안에서부터이다. 특히 동양 음양으로서의 이 내면적인 길 추구가 가능하게 된 것은 이 작품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데미안을 기점으로 클링소의 마지막 여름싣타르타에서 음양의 두 극, 동시동등의 길이 갈구되고 있다. 이어서 작품 요양객부터는 현실세계와 작품 주인공들의 자아 두 상반세계를 동시동등의 긍정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데 이 방황의 내면적 갈등이 슈테펜볼프를 거쳐 나르치스와 골트문트에 이르기까지는 고조되다가, 조화 융합의 안정된 길은 후기 두 작품들, 동방에로의 편력 Die Morgenlandfahrt유리알 유희에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작품 데미안을 분석해 보면 데미안은 헤세가 내면의 길로 들어섬을 보여주는 첫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헤세는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시민사회의 질서의 무너짐과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의 붕괴를 보게 된다. 그는 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시대와 대결하였는데, 고뇌와 절망의 원인을 외부세계에서가 아니고 자기 내부에서 찾을려고 했다. 그 과제는 이 소설 서두에서 "어떤 인간의 삶도 결국은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길을 위한 것이며, 그 길의 시험이다."라고 한 소설을 기점으로 초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명랑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싱클레어가 친구 데미안과 이상적인 여성으로서 존경하는 데미안의 어머니의 인도를 받아 괴로움 많은 청년시절을 극복하고 점차 자기의 사명에 눈떠 가는 과정이 대체적인 줄거리이다.

 

이 자아 '내면에로의 길'에 있게 된 헤세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베른을 떠나 스위스 남쪽 외딴 곳에 거처를 정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한 사람의 화가로서 생활한다.

 

클링소의 마지막 여름이 집필될 때는 헤세가 테신에서 새로운 고향을 찾은 1919년 무더운 여름으로, 그에게 새로운 인간 지표가 주어진 무렵이었다.

 

그 당시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병은 이제 지나간 것 같다. 나는 죽지 않았고 지구와 태양이 나를 위해 회전하고 있는 것 같다. …… 다시 한번 이 세상은 나의 것이다 …….

그는 새로 시작되는 삶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며, 자연에 파묻혀 매일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많은 밤을 이야기로 지새우기도 했다. 테신의 자연과의 만남은 헤세에게 풍부한 언어 표현의 다양성을 주었다. 그는 자아 밖 생활에서 유쾌한 날들을 보내면서 제 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더불어 인간들이 좌절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헤세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몰락을 경고했는데 그런 대표적인 작가로 스펜글러(O. Spengler)를 꼽을 수 있다. 스펜글러는 그의 작품 서양의 몰락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에서 전후 암담했던 서양의 현실과 보다 나은 미래의 새로운 세계에 관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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